신화를 보면 부여에 있던 주몽(추모)가 대소의 핍박을 피해서 졸본에 왔고 구려국이라 불리우던 이 졸본의 왕이 되어서 고구려를 세웠다라는 이야기가 대표적인 고구려의 건국신화입니다. 그런데 보면 고구려와 부여의 관계에 대해서 추모성왕때의 입장은 나름 상당히 우호적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나라를 배신한 부여인 추모의 어머니인 유화부인을 태후의 예로 장례를 치룬 예가 대표적 사례일겁니다. 그리고 추모가 고구려의 영토를 확장하는데 있어서도 마찬가지죠. 과연 나라를 배신한 추모의 부모를 태후의 예로 장례를 할 이유가 있었을까요? 유리때만해도 부여군의 군세에 눌려서 힘을 못쓰던 고구려였다는 사실을 봐도 그렇습니다.

간단한 기록들이지만.. 저는 이러한 기록들을 봤을때 추모가 부여의 왕족의 왕위다툼에서 밀려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바이킹등과 같은 입장에서 첫째가 아니기 때문에 자신도 왕이 되기 위해 졸본쳐서 합친다음 부여의 실질적인 제후국이나 분국역할을 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국가배신자가 나라를 자기 나라 근처에 세웠는데 그냥둘리가 없기 때문이죠.

추모의 죽음에 관해서도 기록을 보면 유리가 온지 1년만에 왕위를 물려주고 죽습니다. 저는 이러한 기록들을 그리고 나서 유리때에 오자 부여와의 갈등이 시작된다는 점을 볼때 고구려가 추모성왕때는 부여의 분국이나 속국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예를 들어본다면 이제 광개토태왕때 고구려와 신라의 관계를 비유로 들수 있겠지요. 장수왕때등의 고구려와 신라를 보면 실성마립간을 고구려가 제거하고 눌지마립간을 옹립한 것과 같은 형태가 이와 유사하다는 느낌입니다. 물론 눌지마립간 이후나 고구려군 100여명을 죽인사건등의 예에서 볼때 신라의 고구려에 대한 독립운동(?)형태의 저항을 봐도 유리때 고구려-부여와의 전쟁양상과도 엇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어서요.

따라서 오히려 고구려 역시 부여가 졸본을 공격하거나 혹은 졸본의 구원요청을 통해서 졸본의 연타발이 부여에게 항복과 속국이 됨을 증명하는 것에서 부여 왕족인 추모와 결혼을 시켰고 그것으로 추모가 자신의 분국을 부여를 통해서 세웠지만 추모의 왕위를 유리로 대신 옹립한 사례를 적용해본다면 충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역사쪽에 그리 깊게 전공을 하는 입장이 아닌 사항인지라 한번 보는 느낌대로 추정해서 이야기해본 것입니다.
Posted by 잡상다운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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