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군에 대해서 한국인들 특히 밀리터리 매니아들이 요상한 트집성 인식이 있다면 한국전쟁에서의 인해전술 문제에 대해서 그때도 비하적으로 보는 경우가 있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물론 중국의 성장이 허울좋은 거울일수도 있는 문제일수도 있습니다. 지난 대지진때 중국군의 능력은 기대이하였으니까요.
아무튼.. 그 얕보는 인식에 대해서 유용원의 군사세계에서 주로 중국군 즉 중국 인민해방군(PLA)의 자료들을 많이 올려주시는 한국황금전사님의 글을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한번 뜻깊게 보시는게 좋은 글입니다.
중국의 인해전술은 서방에 약간 포인트를 벗어나 알려진 점이 없지 않습니다. 우리나라는 6.25 당시, 중공군 참전으로 1.4 후퇴를 경험했기 때문에 중공군의 인해전술이 그냥 사람으로 밀고 들어오는 것으로만 알고 있지만, 사실 중공군이 사용하는 인해전술은, 일종의 페인트(일종의 聲東擊西)와 상대편 취약지점에 대한 전력 집중의 결과물이고, 여기에 당시 참전한 미군은 일본에서 거의 왕처럼 지내던, 말하자면 모진 훈련이나, 전투경험이 부족한 군대였기 때문에 중공군에 대응하는 방법을 몰랐었습니다. 반면에 중공군은 미군이 구사하였던 장비 중심의 전술이 안먹히도록 만반의 대비를 하였고, 이러한 일련의 상황이 우리의 1.4후퇴로 이어지게 됩니다.
우선 병법의 기초는 상대의 장점을 차단하고 자신의 특장을 확대하는 것인데, 당시 미군은 막강한 지상 화력을 가지고 있었고, 여기에 항공전력까지 대단하였습니다. 그러나 50년대 초반 기준으로 미군은 야간 항공 작전에 매우 큰 제한이 있었고, 당시 참전하였던 대부분의 미 지상軍도 야간 전투 경험이 전무한 상황이었습니다.
여기에 장비 중심의 작전을 펼치는 미군은 평지에서는 그 전투 역량을 십분 발휘하지만, 산지가 많은 한반도 북부지역에서는 기동성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장비 운용에도 제한이 있었고, 오히려 평지에서 강력한 화력을 자랑하던 장비 때문에 큰 위험에 빠지기도 합니다.
이러한 상황적 배경 아래서, 우선 중공군은 미군의 장점인 강력한 화력이 기동성 및 화력에서 제 능력을 발휘할 수 없도록 한반도 북부 깊숙한 산악지역으로 미군을 끌어들였고, 여기에 미군은 보유 장비의 기동 및 방열의 제한으로 인하여, 고지가 아닌 저지대의 평탄한 지형에 陣을 치게 됩니다. 중공軍은 이 상황을 이용하여, 고지에 자리 잡고, 능선을 따라서 미군과 아군을 포위하게 됩니다.
또한 주간에는 미군이 항공기를 운용하여, 중공군을 폭격하기 때문에 적(중공군)은 주로 야간 작전을 행하였으며, 야간에는 아군이 상황 파악이 힘든데다, 전투 경험마저 일천하였던 당시 미군과 아군은 중공군에 대응하는데 애를 먹습니다.
이 상황에서 적(중공군)의 공격 스타일은, 우선 아군 진지 각 곳을 소규모 부대로 공격하여, 아군 화력거점(기관총좌, 박격포 진지 등)과 지휘통제 거점을 파악합니다. 여기에 다시 부대 규모를 제각각 바꿔가며, 아군 진지 여러 곳을 공격하여, 아군 진지 취약 지점을 파악합니다. 이 후, 주공(主攻)을 가장하여, 엉뚱한 곳을 일정 규모 부대로 공격하거나, 꽹과리, 징, 피리 등으로 엉뚱한 방향에 대규모 병력이 있는 것 처럼 위장합니다. 아군은 야간 전투 경험이 없는 데다가, 야간에는 상황 파악이 더더욱 어렵기 때문에 상세한 적정을 파악할 수가 없고, 이미 여러 차례 전투를 치렀기 때문에 피로감과 공포, 탄약을 비롯한 물자부족에 처하게 됩니다.
이러한 때에 적(중공군)은 아군 취약점에 자신의 정예병력을 집중 투입하고, 적의 특공조는 아군 지휘통제 거점을 직접적으로 공격합니다. 물론 공격 前에 아군 취약점에 대하여, 적은 엄청난 규모로 공격 준비 사격(각종 구경의 야포와 박격포)을 집중하고, 이어서 대규모 적 병력이 파도처럼 밀려오고, 또 밀려듭니다. 아군은 이러한 적의 전술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큰 혼란에 빠지고, 특히나 지휘 통제부가 피습당하여, 상황이 통제 불능에 빠지고 맙니다. 더구나 야간이라 항공지원이 어렵고, 포대 자체가 공격을 당하는 상황에서 야포 지원이 어려운 상황이 됩니다.
결국은 아군은 대혼란을 맞아, 진지를 이탈하게 되는데, 군대는 작전 상, 후퇴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건, 후퇴를 하더라도 대오가 무너지면 안되는데, 너무 충격이 컷던 탓에 질서가 완전히 무너진 상태에서 급속하게 전열이 붕괴됩니다.
당시 우리는 중공군을 너무 얕봤습니다. 그러나 중공군은 수년간의 국공내전을 통해 각종 전술에 익숙하게 되었고, 특히나 강한 상대를 맞아 어떻게 싸울것인지. 우리 보다 연구가 깊었습니다. 결국 부족한 무장을 상대에 대한 상세한 연구와 연구를 토대로 도출된 전술로 대응한 중요한 사례입니다.
결론적으로 그들은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잘 못 알고 있는 부분이 많은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당시 참전한 중공군이 대부분 공산화 이전의 홍군(공산당 군대) 출신인 걸로 아는데, 실제로는 당시 참전한 중공군 가운데 대다수가 과거 국민당 군대에 소속된 군인이었습니다.
제가 현재의 물음 또는 미래의 중국군 전술에 대한 질문에 과거의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은 이유는 우리가 중국군을 생각할 때, 너무 우리 상식에만 국한되어서 사고하기 때문입니다. 6.25 때도 우리는 중공군을 그냥 간단히 마적 때와 비슷한 부류로 생각하였고, 적에 대한 잘못된 판단은 그대로 1.4 후퇴로 이어집니다.
당시 중공군이 운용한 전술은 어떻게 보면, 굉장히 성공적이었습니다. 오늘 날 까지도 우리가 중공군의 인해전술, 인해전술, 하면서 이야기를 하니까요. 그러나 그들이 상황을 어떻게 유리하게 이끌어 갔고, 구체적으로 어떤 전술을 사용하였는지, 지금까지 자세하게 이야기하는 사람이 별로 없었습니다. 인해전술에 대한 단순한 폄하 이외에는요. 이러한 부분은 우리가 현대의 중국군을 파악하는데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데, 저는 이 부분이 정말 안타깝습니다.
현재 중국군은 막강한 화력 투사능력이 있고, 희생을 무릅쓰고자 하는 대규모 병력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중국군을 파악하는데,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그 거대한 무력 역량은 물론 그 운용에 있어서도, 우리의 일반적인 생각과는 다르게 중국군이 의외로 능수 능란한 부분이 많다는 것이며, 시간이 흐를 수록 이러한 부분은 강화된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