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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루스의 에레메스님께서 이 문제에 대한 포스팅을 하셔서 저도 동참하는 차원에서 한번 댓글은 썼지만 트랙백으로 더 이야기해보고자 써봤습니다. 정관의치를 구현했던 당태종의 고구려 원정인 제1차 고당전쟁때 당군의 규모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이 많습니다.


17만명이냐? 아니면 30~50만이냐?


라는 기준입니다. 즉 전투병만 이러하다는것이죠. 17만명설을 지지하는 분들은 사실 1군의 규모가 5천~2만명까지 확실한 편제규모로 나뉘는게 아니고 기록상으로도 17만명만 언급되어있으며 당군의 당시 원정때 병력동원도 10~20만명을 넘지 않았다라는 기록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반면에 반대측에서는 숫자가 너무 적어서 원정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입장을 이야기합니다. 저는 당연히 위 주장에 대해서 반대측 입장이기 때문에 전 반대의견을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우선 고구려 침공군의 최고수뇌부인 당태종과 당군 장군단은 기본적으로 고수전쟁을 비롯하여 전쟁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들입니다. 특히 4차례의 고수전쟁에서 병력의 중요성은 말할것도 없이 경험했던 사람들입니다.아무리 패배를 했다고 하지만 고수전쟁기간동안 고구려는 함부로 야전기동을 수나라 군대와 치루지 못했습니다. 이는 병력에서 너무 압도적인 위치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공격자에게 가장 불리한 전투인 산성에서의 공성전에서 중요한건 양적 전력의 병력의 가용성이라는건 다들 인정하는 일입니다. 19세기가 되도록 화약을 통해 대포의 발달이 없었던때까지 공성전에서는 방어자와 공격자의 모든 기술력과 동시에 전투병력이 동원되었습니다. 상대적으로 불리한 위치적 조건에 있는 공격자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양적전력을 잘 활용했지요.



이는 결국 당태종과 당군의 장군단 수뇌부가 양적전력을 결코 가볍게 안볼수 없는 문제로 인식했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게다가 진공루트또한 해군을 제외하면 사실상 고구려의 핵심방어선 라인인 요동방어선을 돌파해야하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산성에서 각종 공성전을 치루어야하고 동시에 점령후 기동로 라인에 대한 고구려군의 기동예비전력인 산성기병에 대한 대응력을 확보하려면 결국 17만명갖고는 어림도 없는 숫자라고 할수 있을겁니다. 아무리 반간계나 이간책과 같은 첩보전을 펼친다고해도 야전과 동시에 공성전을 주축을 대비하는 원정군의 규모가 이렇게 적을수는 없으니까요. 이는 훗날 고당전쟁이 본격적으로 치루어지면서 볼수 있는 부분입니다.


또한 당군이 아무리 정예화를 한다고해도 근본적으로 정예화의 인식은 양적전력으로 할수 있는 문제를 질적으로 얼마나 커버함과 동시에 그이상의 극대화를 펼칠수 있는가가 바로 정예화의 핵심입니다. 오늘날에도 병력이 감축되지만 대신에 첨단장비로 그 병력이 할수 있었던 일 그이상을 재현구현하는 체제와 장비등을 운영하게 만드는것이 정예화를 이야기하고 있고 당시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면 아무리 정예화를 한다고해도 과연 병력수를 5천명으로 두고 갈까요? 이런 원정군을 편성하려면 하이테크놀로지 형태가 되어야합니다. 하지만 당나라와 고구려의 무기차이에서 각각의 강점은 있었지만 전력을 우월지을만한 차이적 기술은 없었습니다.


17만명 그것도 해군이 4만명이라 제외되고 지상군만 13만명 대비 최소 고구려군 총병력이 30만명이상이고 고구려가 야전에서 기동할수 있는 예비병력만 15만명인데.. 고구려가 그 강력한 예비전력을 갖고도 예비전력보다도 못한 원정군을 상대로 야전을 과연 안치루었을까요? 오히려 원정이 들어오는 병력이 적은데 왜 그렇게 요동방어선이 박살나는동안 15만 대군은 무엇을 하고 있던걸까요? 오히려 한번 해볼만한 야전이다 해서 야전을 치루어서 격퇴를 했겠죠. 대표적으로 고려와 요나라의 전쟁의 사례에서 고려군의 대응에서도 볼수 있습니다. 몽골때도 마찬가지였고요.


게다가 요서지역에서의 야전기동이면 예비전력인 15만을 제외하고도 요동방어선에 못해도 10~15만내외의 병력이 또 있습니다. 필요하다면 증원군 5~7만이상을 받는다면 오히려 양적으로 고구려군이 당군보다 압도합니다. 게다가 요서지역에는 고구려군의 전진기지들이 있었고 1차 고당전쟁때까지만해도 거란족의 통제의 우위는 고구려에게 있었습니다. 적보다 병력과 지리적 이점등 모든것이 우월한데 야전을 안했을수 있을까요? 오히려 당군보다 공세적으로 나와야 정상이죠. 이는 고구려 해군전력을 제외하고도 나온 숫자라는걸 감안한다면.. 더 그러하죠.



게다가 화약시대도 아닌 고대시대에 병력이 그렇게 적으면 다수의 성 방어진이 네트워크로 연결되어서 침공군을 계속 압박하는 전략을 구사하는 요동방어선의 특성성 공격은 고사하고 오히려 역으로 수세에 몰릴가능성이 큽니다. 게다가 숫자가 적은데 병력을 분산해서 공격하기까지했죠. 수가 적은데 위장도 아니고 병력을 분산한다는건 자살행위입니다. 야전기동이 아닌이상 공성전을 목적으로 하는데 그렇게 한다는건 말이 안됩니다. 베테랑들인 당태종과 장군단이 그런 미친짓을 할리는 없지요. 


군사전략상의 경우를 적용해볼경우 당군이 육군만 10~13만명밖에 안된다는건 납득할수 없는 일이라고 할수 있을겁니다. 당군은 수나라때보다 더 공세적인 군대였습니다. 그런 군대가 과연 과거 전훈의 교훈을 제대로 반영도 안한다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리고 고구려 원정때만 당이 30~50만명 수준의 전투병력을 동원할 이유는 전례를 봤을때 없다고 그전까지 당나라는 사실 사방이 적이었습니다. 사방이 적인데 사방을 통제하지 않고 병력을 함부로 대규모로 동원할수 있었을까요? 오늘날 중국만해도 주변국가와의 국경과 민족주의 갈등문제등으로 한반도 유사시 상황에서 한반도에 투입할수 있는 병력이 20개에 가까운 집단군중에서 고작해봐야 2~3개 집단군으로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당나라도 마찬가지죠.


당나라가 고구려를 공격할때는 왠만한 위협세력을 대부분 다 제압하고 나서 전력을 집중투사한 원정입니다. 당연히 그 규모가 다를수밖에 없지요. 수나라가 113만 5천명을 동원했을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만큼 고구려의 군사력과 인구 그리고 경제력이 주변국과 달랐다는 이야기이기도 포함되지만 그만큼 정황적 현실상 수나라나 당나라 모두 전력집중이 가능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따라서 당나라의 그전까지의 원정전례를 비교한다는건 당시 정세적 정황을 무시한 결과물이라고 할수 있을겁니다.


게다가 토번에 당의 사신이 가서 허장성세적인 발언이긴햇지만 백만대군을 동원햇다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고작해봐야 17만 대군을 동원하고도 그런 허장성세가 과연 통할까요? 어느정도 병력이 되려면 30만명은 되어야 뭘 100만은 동원한다고 속이기라도 하겠죠. 외국에 가서 허장성세를 해도 어느정도것 할수 밖에 없는게 토번은 당에게 과연 세작과 같은 첩자를 안보냈을리 만무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저는 에레메스님의 주장대로 17만대군이 당군의 총병력이라고 볼수도 없다고 봅니다. 최소 고구려군이 예비전력 15만명이 절반가까이 손실을 입고 요동방어선의 주요 성들이 박살날 수준에 고구려 산성기병들의 기동전에 대응할수 있는 병력수준이라면 최소 못해서 35만. 최대 50만명은 충분히 생각해볼수 있는 전투병력을 확보하여 운영했을 것이라는 점을 간과할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최소한 아무리 개인기를 포함해서 장비에서 고구려군보다 상대적 우세를 점하더라도 대응이라는게 되었을겁니다. 10~13만명 내외는 정말로 하이테크놀로지까지는아니더라도 화약시대수준 이야기를 하지 않는이상 어려운 일이라고 봅니다.


 


Posted by 잡상다운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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