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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극 정도전때문에 요동정벌 이야기를 두고 여러가지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리민족이 요동정벌을 시도하여 성공까지 간건 공민왕때의 제1차 요동정벌때를 제외하면 사실상 제2차 요동정벌은 위화도회군을 포함하는등의 문제로 거부된게 현실입니다. 마지막 시도가 조선초기 요동정벌도 역시 그랬지요.


댓글들을보면 흥미롭게 보여집니다만.. 고려말기의 국력을 과대평가한 문제들도 있지만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요동성 공략자체는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지닌다고 하겠습니다.


고대시대 요동성 부근이 단군조선시대의 중심지였다가 연나라에게 개박살나고 나서 지금의 평양으로 옮겨지고 나서 다시 회복했는지 여부가 논란으로 나오긴하지만.. 전 회복했기 때문에 진나라와의 문제에서나 한나라의 문제에서 오랫동안 싸울수 있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고구려시대에는 요동지역은 사실상의 중국왕조들로 통하는 길이자 동시에 방패였던 전략적 요충지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이러한 전략적 요충지의 역할은 매우 큰것이 중국왕조가 고조선-고구려-발해를 치기위해선 무조건 통과해야하는 기동로였기 때문입니다. 당장 추정되는 고당전쟁시기의 요동성 고구려군 병력만 2만명이 기본적으로 추산되는 주둔병력임을 감안한다면 요동성 크기등에서 병력이 더 증대될 가능성은 더 큽니다. 게다가 요동성 성주의 위치도 요동관할에서 가장 높은것으로 평가되는 이유도 그러한 이유때문이기도 하지요. 3차 고당전쟁당시 엄청나게 우회를 해서 밀고 나려온 케이스가 있지만 요동방어선이 굳건한 문제는 여전히 논란대상감이기도 하지요.


아무튼.. 요동성지역 자체가 실질적인 전략적 요충지라는 의미는 곧 요동성을 제압하는자가 요동과 만주의 실질적 지배를 공고히 할수 있는 기반확립이 되는 것을 의미하는 셈입니다. 이는 결국 나중에 중세와 근세에서도 영향을 미치는 과정을 겪게되며 현대에서도 마찬가지가 됩니다. 


공민왕때 제1차 요동정벌때도 요동성 점령 즉 우리입장에서는 수복이라고 표현할수 있는 문제의 사항이 되었을때 고려 스스로도 고토회복이라고 생각했던 점을 감안한다면 말다한 셈일겁니다. 하지만.. 당시 요동정벌후 유지확대가 가능했는가 여부로 들어간다면 논란이 매우 시끄러워집니다. 우선적으로 점령시에 아시다시피 명군은 요동에만 20만가까이가 주둔한 상태였습니다. 애초에 나하추가 데리고 있던게 20만이었으니까요. 따라서 고려군이 전투병과만 따져서 5만일경우라도 야전을 치루기에는 어려움이 컸다라는 평가를 내리고 싶은 규모입니다. 야전을 치룰때에는 병력규모가 괜히 따져지는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공성전에서는 방어자의 이점의 이유로 적은수의 규모로 방어를 할수 있다라는 가능성은 있지만 평야에서의 야전기동은 양적전력을 무시하고 평가하는건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물론 명나라가 50만 대군으로도 2~3만명의 몽골군에게 포위섬멸당했던 =토목의 변=을 고려한다면  다를수도 있겠죠. 따라서 점령이 쉬웠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습니다.


또한 요동지역의 명군을 축출하여 점령하고 단기간 정도는 유지했다라고 하더라도 명나라 초기는 매우 국력이 신장되던 시점이고 그 절정이 영락제까지 이어졌다는걸 감안한다면 고려가 요동을 정벌유지하는건 매우 단기간이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우선 아시다시피 고려말기의 재정적 문제 상황과 토지문제는 사회적으로 해결이 근본부터 어려웠던 사항입니다. 고려말의 토지개혁이 이루어진 결과물들이 무엇인지만봐도 답은 쉽겠죠. 따라서 설령 요동성을 정벌하여 요하를 끼고 유지를 한다고해도 내부적 국력의 축소는 결국 고려가 스스로 물러났을 가능성을 크게 대변하는 문제가 될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설령 명이 고려의 요동점유를 인정한다고해도 영락제가 등극하고 나서 팽창주의 정책에서 제1의 목표로 고려가 명과의 전쟁을 치루었을 겁니다. 그렇게되면 가득이나 내부적인 국력축소의 폐단이 계속되는 고려가 국력의 팽창이 욱일승천하는 명을 맞서 싸웠다면 패배는 자명한 일입니다. 




이번에 사극 정도전에서 보여준 웅장한 CG는 KBS 정통사극이 안죽었음을 보여줬네요.


힘이 약해도 팽창은 가능하나 일시적인 점유외에는 할수 없다라는게 실질적 결론입니다. 당시 고려군이 아무리 정예라도 전투병이 많아야 5만명입니다. 요동에 공략+유지를 하는데 소요되는 전투병치고는 너무 적은게 현실입니다. 그것도 강대국을 상대로 말이죠. 상대적으로 적의 원정군대비해서라도 최소 1/3이상의 병력으로 대응했던게 고구려군입니다. 반면에 1/3도 안되는 병력으로 방어및 유지를 한다는건 불가능합니다. 요동성이 유일 핵심 기동로이긴하지만 우회기동로 역시 존재하는 곳이 만주지역임을 감안한다면 더더욱 그러하지요. 그렇기 때문에 고구려도 요하방어선 체제를 정비하는데 몇대에 걸쳐서 노력을 했고 고구려가 멸망할때까지 주요 핵심 기동로인 요하방어선 루트는 돌파당하지 않았지요. 하지만 침공군은 우회로를 개척하여 압박했던 전례를 감아한다면 답은 분명합니다. 몽골침입당시 귀주성에 몽골군의 주력을 잡고있었지만 주력일부로 우회해버리자마자 전략종심을 타격을 받았던 전례를 감안한다면 말이죠.


이는 정도전의 요동정벌 체제를 시행했더라도 마찬가지 결론에 도달했을겁니다. 당장 조선군 5~10만명의 전투병력으로 들어왔다고해도 명군은 토목의 변처럼 50만대군을 지상군으로 보냈을 가능성이 큽니다. 요동성 자체를 두고 병력대비를 한다면 수성전을 하는 조선군이 유리하니 작전술적인 측면과 전략적 측면에서보면 우회기동로를 택한 적 주력일부를 어떻게 섬멸하거나 진격한계선에 이르러서 움직일수 없게 할것인가에 대해서는 당시 조선의 남은 병력으로는 감당할수 있는가?의 여부는 논란이 될수 밖에 없을겁니다.


그렇다면 조선시대 요동정벌의 가능성이 있던 시기는 있었을까? 라는 것인데.. 저는 세번의 기회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첫번째는 세종과 문종시기입니다. 세종말기~문종시기가 바로 명의 국력이 이제는 기울어져가는 모습에 있었던 입장이기때문입니다. 반면에 조선은 당시 세계최고의 과학기술력을 자랑하며 국력이 가장 크게 번성할때였지요. 충분히 팽창이 가능했기 때문에 4군 6진의 개척이 가능했고 대마도 정벌이라는 해외팽창도 할수 있는 기점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세종의 문제였던  강한 사대주의 정책 문제와 문종이 오래 제위하지도 못했을뿐더러 세조가 즉위하면서 조선의 국력을 대차게 말아먹으면서 가장 좋았던 기회를 한방에 날려버리게 되지요.(총통군 해체부터 시작해서 기병의 충격력 약화에.. 원정체제의 국방력을 개박살내신분이시기도 하지요 국방노력을 했다는 진관체제가 어떻게 작살났었는지는 임진왜란이 증명해주고 있고요.

내부적으로 가장 이상적으로 좋은시기였고 외부적으로는 좀 불안한 측면은 있었지만 유지가능한 형태의 측면도 있었던 시기라고 볼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두번째로는 정조시기입니다. 청의 국력이 기울어질때가 바로 정조시기였고 최소한 조선후기가 막장에 달아가던 시점이 아직까지도 아니었으며 동시에 안정적인 조선의 변화가 최소한 모순된 체제 안에서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던 시점이기에 가능했던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정조사후 우리가 아는 세도정치와 더불어서 부패와 체제의 막장이 진행됨으로 기회는 한방에 스스로 날리게 되죠. 가장 좋았던 기회는 아니지만 가능성이 큰 기회였던 시기라고 볼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 세번째가 바로 우리가 그리 아쉬워하는 19세기 조선때겠지요. 만주지역 자체가 사실상 무주공산인데다가 대한제국시기 대한제국 스스로도 청에게 만주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려고 했을정도로 청의 영향력이 완전히 상실할정도로의 막장 국력이었던 점은 기회였으나.. 당연히 조선을 포함한 대한제국의 군사제도와 군사력 정비체제가 개판이었고.. 노리는 것을 움직이기라도 했던 대한제국시기의 군대는 장교와 사병간의 갈등을 부추기는 신분제 문제에 개인화기는 군수지원이 어려울정도로 제각각에.. 규모는 포병화력이 뛰어났다고하더라도 결국엔 의병토벌에 투입되는 수준의 병력규모였고 최절정기 병력이 3만정도밖에 유지를 못했던걸 감안한다면.. 원정을 준비하는거 자체가 안되어있는 군대를 보유하고 있었고 대한제국 국력이 그렇게 성공적인 개혁도 추진하지 못했던걸 감안한다면.. 가장 외부적 요인은 좋으나 내부적 요인이 제일 안되어서 할수 없었던 케이스라고 봐야할겁니다.


마치며..


제가보는 조선시대 요동정벌이 가능한 시기의 기회는 3번이었다고 봅니다. 다만 가장 좋았던 시기는 세종~문종시기라는 생각만 드는건 저뿐일까 모르겠군요. 나머지 기회는 사실 내부적 요인이 너무 변수가 크다고 보여지지만  가장 좋았던 시기는 장기유지확대가 가능한 시점이기도 하다고 보여지거든요.



21세기에 와서 이런 논의는 어떨지 모르겠으나 한국에게 기회가 나올수 있다면 우리는 이 역사의 반복을 하지 않도록 해서 민족주의 입장에서는 만주를 수복하여 장기유지하여 완전한 대한민국 영토가 될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죠. 철저한 동화정책과 함께요. 다만 그 기회라는건 제가 봤을때 한반도내 고립주의 정서에다가 반서방주의 운운하며 우리민족끼리 지랄해서 얻어지는게 아니라는 것만은 이야기하고 싶군요. 동시에 점유하게 되었을경우 우방국들을 어떻게 지지하게 만들것이냐부터도 철저하게 준비를 해야할것이고요.


http://rozanov.egloos.com/1357387


이글루스의 로자노프님도 저와 동일한 주제의 포스팅을 작성해주셨습니다.


Posted by 잡상다운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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