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개월짜리 파병을 다녀오고 집 가기 한달전부터 엄청 들떠있었다. 집에가면 무엇을 먹을까? 정말로 부모님한테 효도 해야지 동생 데리고 쇼핑이나 갈까? 아.... 케이티가 엄청 보고싶네. 이런 식의 잡생각이 계속 들더라. 

(1년은 원래 13개월 파병이다. 1년동안 돌아가면서 한달정도 집으로 보내줬다가 다시 부른다. 나는 도착하자마자 어머니 아프시다는 소식듣고 지원 신청서 내고 우리 대대장하고 면담하고 바로 한국 일주일동안 제일 먼저 다녀왔다.)


정말로 그 마지막 한달이 지난10개월보다 더 길었던거 같아. 무튼.. 이것 저것 짐싸고 정리하고.. 그리고 C-130에 몸을 맡기고 중간 기착지에서 민간 항공기로 갈아타고.. 그리고 애틀란타로 들어왔다. (군인들은 두곳에서 해외로 나간다. 시애틀 - 애틀란타)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내 총들고 앞에 애들 따라서 쭉 걸어가는데, 사람들이 그걸보고 환호하고 박수쳐주고 와서 어깨 두드려 주더라 정말로 이맛에 군인 하는구나 싶더라. 지난 썰에서 말했는데 어머니가 아프셔서 한국 지원 신청을 했다고 했지? 운 좋게도 1월 3일까지 한국 들어가는 전출 명령장이 나왔다.

파병 다녀오면 이것저것 검사하고. 클래스 듣고, 그리고 상담 같은것도 많이 하는데. 뭐 파병 다녀와서 뭐 그런거 신경쓰나. 들뜬 마음에 그냥 시키는데로 왔다리 갔다리 하면서 시간을 보냈지.

부대 도착해서 첫 일주일은 아침 운동도 안시키고 그냥 뒹굴뒹굴 하게 해주더라. 가족 만나러 갈애들은 가고, 그냥 있을 애들은 있고. 그냥 꽁짜로 휴가를 준거지. 나는 그냥 어디 안가고 부대에 박혀있었다. 어짜피 PCS (전출) 가야되서 이것저것 지급받은거 다시 반납하고 서류작업하느라.

그렇게 첫 일주일은 정말로 기분좋게 술마시고 놀고 그러면서 보냈는데, 시간이 갈수록 뭐랄까 말로 표현할수 없는 이상한 이질감이라고 하나?


1년.. 짧지만 긴 시간이였던건지... 식당을 가도 사람들 웃고 떠드는게 이상하고. 길을 걸어가면서도 버릇적으로 이곳 저곳 살피고.. 도로 주변을

계속 관찰하면서 다니고.. 코너에서 사람이 나오면 소스라치게 놀라는게 점점 잦아졌다. 시간이 갈수록 주변의 소리들이 소음처럼 들리기 시작하고 그로 인해서 편두통이 시작되고. 밤에는 감각이 너무 예민해져서 술하고 감기약 (수면제성분)을 먹지 않고는 잠이 안오더라. 그렇게 잠이 들어도 계속 깨기 일수고... 자꾸 그런게 심해지다 보니 밖에도 안나가고 친구들이 불러도 그냥 귀찮다고

방에만 있었다. 부대 돌아온지 한달쯤 되어서 서류작업도 다 끝나고 전출휴가를 받았다. 50일짜리로. 그동안 모아둔거를 한번에 다 질러서 비행기 타고 파병후, 아니 군 입대후 처음으로 집으로 갔다. 

집에 도착하니까 당시 여자친구랑, 우리 막내, 새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친구들이 엄청 나와 있더라... ㅎㅎㅎ 그때까지는 정말 기분이 좋았던거 같아. 근데 도착하고 우리 아버지가 하시는 말씀이 아직도 기억난다. 


"힘들었구나. 눈빛이 많이 바뀌었네" 


그냥 어깨 으쓱이고 말았는데.... 그렇게 나온 모든 사람들하고 철판볶음 해주는 일본식 식당을 갔다. 왠지 모르겠는데 그게 그렇게 땡기더라. 가면서 밖에 보이는 차들이며.. 몇년만에 바뀌어버린 풍경도 그렇고.. 새로 생긴 동네라던지.. 건물들이 조금씩 눈에 보이더라. 그때 막 이질감이 느껴지더라 어색하고 그냥 민망하고. 옆에서 웃고 떠드는 여자친구랑 동생... 뭐라고 말을 하긴 하는데...


무슨 드라마가 어땠다는지... 유투브에서 이런 비디오 봤냐... 이번애 새로 나온 영화라던지.... 뭐라고 물어보기는 하는데 파병기간동안 인터넷도 없는데서 편지로만 연락을 주고 받다보니 뭐가 있나... 발전기에서 돌리는 전기로 노트북하고 외장하드 두개에 있던 야동 - 영화 - 애니 (애니 겁나 많이 봤다.) 이걸로 그 기간을 버텼는데. 아무튼 그렇게 식당을 도착해서 제일 큰 자리에 모두가 앉았지... 그렇게 앉아서 요리사가 요리를 시작하고 돼지고기로 뭘 만들더라.. 근데 돼지고기 익는 냄새를 맡자마자 갑자기 불타는 시채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더라.. 요리하면서 나는 깡깡깡 소리가 총소리처럼 들리게 되고 그러더니 멍하니 그걸 쳐다보게 되고..  그러다 갑자기 불이 확 올라왔는데 갑자기 존나 온몸에 소름이 끼치면서 딱 나한테 총알이 날라오는 기분 같은게 드는거야 그리고는 막 갑자기 잔상같은게 보이더니 속이 울렁울렁 거리고... 그자리에서 막 미친듯이 소리를 질렀다.


교전 교전! (Contact Contact) 내 총 어디있냐? 씨발 내총 어디 있냐고!  이러면서 영어로 존나 크게 지껄이면서 자리에서 인나서 주변을 둘러봤는데

갑자기 싸한 느낌 있지 않냐? 그게 내 등골을 쓱 하고 지나가면서 갑자기 주변이 정상적으로 보이더라. 요리하던 요리사도 요리 그만두고. 시끌벅적한 레스토랑안이 정말로 싸해져서 나만 쳐다보고 있는데. 무슨 시간이 멈춰버린줄 알았다.

그리고 그 돼지고기 익는 냄새가 너무 역하게 느껴지는거야 못참겠어서 그자리에서 존나 쳐먹은것도 없는데 물만 계속 게어내고 옆에서 여자친구는 막 울고.. 아버지랑 동생이 옆에서 부축 해주고.

정신 차리고 보니까 아직도 주변은 싸하고... 아버지는 미안하다고 하면서 먹지도 않은 요리값 지불하고 나왔다... (ㅅㅂ... 200불도 넘게 나왔을텐데 존나 아깝다 지금 생각하면 존나 아깝다.. 그게 뭐라고 그걸 못참았는지 씨발... 식당 한가운데서 토하고 있는 베츙이 ㅍㅌㅊ?)


집에 가는길 내내 아무도 말도 안하더라.. 여자친구 집에 대려다 주고 그리고 집에 온다음 그냥 집에 있던 김치랑 밥먹었다. 집에 온 첫날부터 악몽을 꾸기 시작 했는데 이 악몽은 거의 한국가서 4 ~ 5개월이 될때까지 계속 꾼거 같다. 악몽이 깨고나면 그자리서 끝나는게 아니라 다시 자면 다시 연결되어서 꾸어지는 꿈 있지 않냐? 내 다리 잘리고 팔잘리고 그리고 죽는꿈에.... 스나이퍼 때문에 구덩이에 친구 셋이랑 있던거...

처음으로 사람 죽였을때.... IED 터지는꿈. 그리고 불타고 있는 친구.... (친구 꿈은 친구집에 다녀온 이후로 한번도 안꿨다... )

자다가 일어나면 내 다리 만저보고... 팔 만저보고 그리고 총맞은 자리 만져보는데.. 이게 정말 꿈인지 현실인지.. 내가 뭐하는건지 구분도 안되고 혼란스럽기만 하더라.


사람 많은곳 가면 신경이 곧두서고.. 뒤에 누가 있으면 불안하고... 큰소리만 나면 저절로 바닥에 누워서 머리 감싸는거는 하루에도 몇번씩 하고..안한다 안한다 하는데 생각도 하기전에 몸이 저절도 반응하더라.... 새벽에 나때문에 가족들 잠도 못자고... 아침에 목이 너무 쉬어서 목소리도 안나온적도 있고...... 집에 온지 한 열흘쯤 됬나...? 여자친구가 가방들고 집에 찾아오더라. 자기 부모님이 타주로 여행갔는데 우리집에서 나랑 있는다고 안따라갔다고.

걔네 부모님도 겁나 쿨한지 바로 승낙 해서 한 3주를 우리집에서 지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여자친구가 정말로 고마웠다. 1년넘게 얼굴도 안보여준 남자친구가 뭐가 좋다고 그 긴 시간동안 기다리면서 통장관리에 필요한 물건 있으면 바로바로 보내주고. 편지도 꼬박꼬박 써주고. 

집에 찾아와서 놀다가고.... 

그리고 3주동안 나랑 있으면서 먹고 자고 씻고를 다 같이 했으니까.. 악몽꾸다 일어나면 옆에서 먼저 일어나서 등 쓰다듬으면서 괜찮아 괜찮아라고 말해주는데 그게 그렇게 위안이 되더라.  


내가 어려서부터 등만 문질러주면 잠들었거든.. 거의 매일을 잠 못자는 나를 위해 등문질러 주고.. 밖에 나가기 싫어하는 나때문에 밖에도 안나가고 옆에 있어주고... 요리해주고 그리고 1년이 넘게 쌓인 ㅍㅍㅅㅅ 까지 다 받아주더라...  옆에만 있어주는게 의지되고 너무 힘들고 심신으로 지치고... 그리고 죽을꺼 같다고 투정부리면서 우는거.. 그것도 말없이 그냥 다 안아 주더라...

근데 웃긴게시간이 지날수록 평화로운 분위기가 익숙해지고 그리고 마음도 같이 편해지더라. 아마 이 친구 없었으면 더 오랜 시간이 걸렸을꺼야

파병때 생각도 안하게 되고 파병 다녀와서 생겼던 편두통도 사라지고... 대신 아직도 무언가 터지는 소리나면 식겁하듯 놀라면서 몸이 거의 반정도 밑으로 내려가는거는 어쩔수 없더라. 일상적인 생활이 가능해지는데 50일여일 정도 걸렸는데. 악몽은 한국 가서도 시달렸다...


한국에서 군의관한테 정신 상담받으러도 몇번 갔는데.. 이게 뭔지 씨발.. 그냥 때려치고 나오고.. 한국에 있을때는 홍대? 일산? 강남? 이렇게 다녔는데 한두번씩 밖에 안가보고 주말마다 어머니뵈러 공주 내려갔다. 처음에는 서울역에서 KTX 타고 대전역에서 지하철 갈아타고... 그러다 시외버스의 존재를 알게되어서 바로 공주로 직행했지... 아.. 씨발.... 더 편한걸 늦게 알아서....

거의 10년을 어머니를 못만났는데.. 다큰새끼가 10년동안 부릴 어리광이며 뭐며 다 부려봤다. 속 겁나 시원하더라.

요 근래는 악몽도 잘 안꾸고 정상인 코스프레가 가능한거 같아.. 가끔 정신 나갈꺼 같을때 있으면 그냥 뭘 처먹으면 낫더라... 

긴글 읽어줘서 고맙고. 조금 허구같은 이야기지만 뭐 다 실화니까..... IED 몇방 근처에서 맞는 바람에 안다쳤어도 단기 기억력이 좀 떨어진거 같다..

파병 다녀와서 부대 있을때는 정말 한것도없이 히코모리짓 하면서 겜만 했고... 집에 와서는 처음 몇번 나간거 말고는 거의 여자친구랑 집에서만 있었고..

그때 생각하면 그냥 힘들다... 죽을만치 힘들다 라고 밖에 표현이 안된다...


요약


전쟁 할때는 재미있다. 짜릿하다. 엔돌핀에 아드레날린 분출 된다. 근데 너무 적응하면 나중에 와서 나처럼 고생한다.


출처: http://bemil.chosun.com/nbrd/gallery/view.html?b_bbs_id=10044&pn=1&num=188634


저의 후기.




한국에서 지난번에 02년 제2차 연평해전에 참전했던 예비역 해군 부사관의 PTSD에 의한 화재(방화)사건이 정말 최근에 있었습니다. 그가 그런 정신적 스트레스를 극복하지 못한 문제는 결국 우리군의 PTSD나 전투스트레스의 완화를 지속적으로 해줄수 있는 군사사회복지제도의 부재와 함께 대응력이 무척 낮다는걸 다시보여주는 대목이죠. 물론 아무리 잘되어있어도 이런 문제점들은 결코 피할수는 없습니다. 위에 올려주신 한국계 미군분의 경험담의 사례는 이것을 증명하는 일이니까요. 게다가 02년 제2차 연평해전은 우리 사회가 결국 잘난 월드컵하느라 동시에 평화를 구걸하고 싶어했던 사회분위기의 특성상 그들이 외면받았던 시기에 벌어졌던 일이라서 당시 참전자들의 내재된 PTSD문제는 언론을 통해 나오지 않았더라도 심각했을 가능성은 큽니다. 그것이 존속해있을 가능성도 크고요.(이는 미국의 베트남전 참전자들과 PTSD 경험자들에게서 가장 잘 나타납니다. 그시기에는 아예 더 심했기 때문에도요.)


우리 한국 예비역들도 강도는 낮아도 비슷한 꿈경험등이 있을겁니다. 실제 예비역들에게서도 낮은 PTSD가 나타나며 빠르면 신병위로휴가에서도 경험했던 케이스도 개인적으로 봤었기 때문에 한국도 남의일 문제는 아닙니다.(늙어서 군대꿈꾸면 추억 운운하지만.. 글쎄요?)


아무튼.. 한국도 이제 파병활동이 많아지고 한반도 유사시 상황에서 저런 전투라는 매우 흥분되고 짜릿한 경험을 하게되는 사람들이 나올겁니다. 인간이 전쟁에 빠질수 밖에 없는건 전쟁행위가 3대 욕구인 성욕-수면욕-식욕만큼이나 짜릿한 쾌감과 흥분을 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전쟁의 파괴의 경험으로 오는 스트레스-충격등의 부정적 요소는 관심과 지속적인 지원이 없다면 결과적으로 부정적인 파괴효과 소위 반사회적행동으로 나타나기 쉽습니다. 그게 되더라도 100% 다 도움이 되지도 않고요. 


전쟁에 익숙하고 전쟁문화가 사회문화에 연결되어있는게 강한 나라중 하나인 미국에서도 PTSD에대해서의 지속연구와 투자 관심이 있는데 우리는 과연 어떨까요? 과연 한국은 그런 참전자나 경험자들을 포용할수 있는 능력과 지속적 지원을 해줄 제도는 있나요? 이해조차 하기 힘들어하는 모습들이 많이 보여질수 있을겁니다.


주둥이로 무상복지!무상복지! 복지!복지! 지껄일 시간이 있다면 이런 문제와 군사사회복지제도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관심을 써보는건 어떨까요?



Posted by 잡상다운족
BLOG main image
http://blog.livedoor.jp/shyne911/ 로 2016년 12월 18일부터 본진권한이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by 잡상다운족

공지사항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4270)
일반게임잡상 (178)
드라마/영화/애니 잡상 (875)
에로게 및 성인 잡상&리뷰 (544)
히로인과 캐릭터들에 대한 잡상 (300)
밀리터리 잡설 (877)
도서평론 (71)
개인푸념과 외침 (183)
사이트 링크와 사이트 평론 (592)
여러가지 잡상 (650)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최근에 받은 트랙백

Total :
Today : Yesterday :